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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기획시리즈10-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술과 여자 (2) [12]

탄핵한표추가

주소복사 조회 11491 09.09.18 00:01 신고신고

 

 

   

 

 

바발쒁히들의  게저찌랄에 참고 보다못해서 어떤 시벌럼들이 진짜 '빨갱이'인가 를  밝히기 위하여 시리즈로 글을 올리기로 하고 지난 번까지 써서 올린 글들입니다.

 

 

[기획시리즈1-폭로] 진짜 '빨갱이'는 '박정희'였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755805&

이 글에서는 '박정희'가  남로당 군총책인 "진짜 빨갱이" 였으며  

 

 

[기획시리즈2-폭로] '빨갱이 박정희'와 야합한 조선일보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281

5.16 구사 쿠데타 이후  '좃쎈일보'같은 사회지도층에 있었던

친일 기득권층들과의 야합과 그 과정에서의 부도덕적 타락상 과

 

 

[기획시리즈3-폭로] 아내도 '고사'시킨 '빨갱이 박정희'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413

 그에 따른  영부인의 외로운 고뇌와 비운울 이야기 하였으며,

 

 

[기획시리즈4-폭로] '빨갱이보다 더한 빨갱이' .박정희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499&

 혼맥으로 얽혀진 정경유착과 그에 따른 병폐를 설명드렸고

 

 

[기획시리즈5-폭로] 박정희를 위해 사법살인한 '이회충'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768&
박정희 정권을위해 사법살인까지 한 '이회충'에 대한 이야기


 

  [기획시리즈6-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972& 

 그리고 '박정희'와 그 '정권'의 부정축재 방법과 사례에 대해 말씀드렸으며

 

 

[기획시리즈7-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2)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190  

 부정축재의 증거물인 청와대 비자금 금고와 그 처리

 

 

[기획시리즈8-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3)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462 

 무형의 재물인 '재단' 들에 대해 보고 있었다가

 

 

[기획시리즈9 -폭로]'빨갱이 박정희'의 '술과 여자'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651  

잠시 촛점을 돌려 '박정희의 난봉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이 열번째 글입니다.

  

어제 글에 이어 오늘의 주제 또한 '박정희의 술과 여자' 에 대한 두번째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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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 재판(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당시 변호인단은 10·26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을 주요 변론 전략 중의 하나로 삼았다

 

당시 박 과장의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의 접견(1980년 1월15일) 내용을 기록한 노트에는 ‘여자 연예인 100명’과 함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신인급에 속한 유명 여자 탤런트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접견 때마다 김재규 부장에게 여자관계를 물었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며 “이른바 ‘채홍사’ 구실을 한 박선호 과장도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1979년 당시 궁정동 안가모습.

 그러나,<한겨레21> 제546호(설 합본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은밀하게 이용했던 이른바 ‘안가’(안전가옥)에서 근무했던 전 중앙정보부 직원의 증언을 보도함으로서 그 대강의 실체가 나타나게 된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100여명씩을 보유한 ‘손이 큰’ 마담 2명이 여자들을 주로 조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연회 접대 여성들은 마담들이 추천하면 중정 직원이 ‘면접’을 봤고 외모와 경력 등을 따져본 뒤 입이 무거울 것으로 보이는 여성 위주로 선택해 수발을 들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이 여성에게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접대 여성은 한 차례 이상 넣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찾으면 만류해 보다가 잘 안 되면 추가로 딱 한 번만 더 접대하도록 한다”고 나름의 원칙을 설명했다.

  

,▲ <한겨레21> 제546호 기사中

 

 여기서 여태까지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더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자료을 올린다.

글이 좀 길더라도 양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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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가 밝힌 박정희의 여자문제

 

 

대통령의 ‘귀’

 

지금도 우리 국민 중에는 ‘영부인’ 하면 가장 먼저 육영수(陸英修·1925~74) 여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단아한 미소에 곱게 쓸어 올린 머리칼. 자애롭기 그지없는 인상의 육 여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세상을 쥐락펴락한 박정희(朴正熙·1917~79)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이자 대통령이 상대하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대통령 앞에서 죄다 머리를 조아리며 “예”라고만 대답하던 시절 “아니오”라고 제동을 건 사람은 육 여사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 여사는 “나는 청와대의 야당”이라고 공언할 만큼 남편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야당이긴 하지만,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권을 차지하기 위함도 아니다”는 말로 청와대 내 야당활동을 계속했다.

 

‘듣기 좋은 소리도 삼세번’이라는 속담이 있듯 아내에게 칭찬보다 쓴소리를 자주 들었던 박 대통령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높은 편이었지만 불만도 적잖이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육 여사의 눈두덩이가 퍼렇게 된 적이 있어요. 대학생들의 격렬한 데모가 끊이지 않고 저항이 계속되자 육 여사가 1968년 11월 한국외국어대를 시작으로 고려대, 공주사대, 한양대, 숙명여대 등지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대학생들을 만나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대통령에게 민의(民意)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대학 순방이었던 셈이죠. 어느 날 육 여사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열을 받은 박 대통령이 ‘임자가 뭘 아냐’면서 주먹을 날렸다고 합디다.”

 

한 정치인의 회고다. 육 여사가 훌륭한 아내이자 내조자였다는 데 딴죽을 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통령에게 항상 직언하려고 애를 쓴 육 여사는 매일 새벽 조간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세상 물정을 파악했고, 남편이 대통령이라는 권위에 눌려 바깥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할까봐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여론을 수집했다.

 

많은 사람이 육 여사의 치적 중 첫 번째로 ‘대통령의 귀’가 된 점을 손꼽는다. 대통령의 막힌 귀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육 여사에게 정보를 주는 일등공신은 영부인의 공식 업무를 담당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육 여사는 비서진에게 “어떤 정보든 가감 없이, 숨김없이, 세상에 떠도는 확인 불가능한 유언비어까지 보고하라”고 강조했다.

 

육 여사의 정보력은 때로 중앙정보부장보다 낫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박 대통령이 육 여사의 말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살아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었다는 것. 육 여사가 전해들은 숱한 정보 중 가장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의 여성편력이었다. 돌부처도 시앗을 보면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듯 조용한 성격에 현모양처인 육 여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와대 집무실의 밀회

 

2003년 늦가을. 필자는 취재를 통해 알게 된 한 여배우로부터 밤늦게 전화를 받았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50대 중반이던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자살 충동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할 것 같다”며 울먹이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는 자정이 가까웠다. 그는 당시 자신을 힘들게 했던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놓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 지금 그분이 생각나”하고 중얼거렸다.

 

필자가 “그분이라뇨?” 하고 되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다.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필자의 반응을 살폈다. 이윽고 그의 긴 고백이 시작됐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대학 4학년 때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때는 연예인이 아닌 대학생 신분이었다. 서구형 미인인 그는 어느 날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인왕산 인근에 놀러 갔다. 다방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남자가 이들에게 다가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대학생이라고 대답하니까 ‘어느 대학, 무슨 과 몇 학년이냐, 집에 전화는 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집에 전화가 없다’고 대답하면서 ‘뭣 때문에 남의 호구조사를 하느냐’고 되물어도 자세한 설명 없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쪽지에 적어주더라고요. ‘꼭 전화를 하라’면서. ‘전화하지 않으면 학교로 찾아가겠다’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무슨 일인지 궁금해 다음날 전화를 걸었어요. 며칠 후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만났더니 ‘중요한 만찬이 열리는데 당황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날 저녁 그는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이 ‘궁정동 안가’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만찬장에 들어가기 전 한 남자에게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그때서야 소문으로만 듣던 대통령 모시는 자리에 참석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날 만찬장에서 그는 대통령 옆에 앉았다. 대통령 외에 남자 3명이 있었는데, 그들 옆에도 여자가 한 명씩 앉았다.

 

“몹시 당황했지만 대범한 척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나더러 노래 한 곡 부르라’고 하더라고요.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는데 도무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난감하데요. 우물쭈물했더니 빨리 부르라고 눈치를 줬어요. 당시 유행하던 가요 한 소절을 부르다가 그만 목소리가 갈라져서 ‘아이, 더는 못 부르겠어요’ 하고 앉자 한 남자가 ‘감히 각하 앞에서 노래를 중단하냐’고 눈을 부라리더라고요. 그런데 각하가 ‘괜찮다’고 하면서 ‘내가 대신 부르지’하면서 제 등을 토닥였어요.”

박 대통령에 대한 첫인상은 딱딱했지만 그런대로 매력적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 이후 그의 ‘안가’행은 잦아졌고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 벌어졌다.

 

“주로 궁정동을 비롯한 안가에서 만났는데, 하루는 대낮에 각하가 찾았어요. 가 보니 청와대 집무실이었어요. 그곳에서 각하와 단둘이 몇십분 있었을까, 갑자기 비서가 후닥닥 뛰어들어와 ‘육 여사가 집무실 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두 사람은 긴장했고 박 대통령은 제가 숨을 곳을 찾았어요. 잠시 후 육 여사가 집무실에 들어오자 태연하게 박 대통령이 ‘임자가 여긴 웬일이냐’고 물었어요. ‘아니, 아니 그냥요’ 하고 대답한 육 여사는 집무실을 휘 둘러본 후 밖으로 나갔죠.”

 

 

 "네 누나 어디 갔어?"

 

박 대통령은 이날 그에게 “큰일날 뻔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과 대통령의 관계 등에 대해 육 여사에게 보고하는 중앙정보부측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배우가 됐다. 당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대통령과의 밀회는 계속됐다. 그가 영화배우가 된 이후에도 육 여사의 ‘뒷조사’는 멈추지 않았다.

 

“네 누나 어디 갔어?”

 

어느 날 건장한 남자들이 그의 집을 덮쳤다. 당시 그의 매니저 일을 도맡았던 남동생이 “며칠 전 누나를 부산에 데려다 주고 올라왔다. 그곳에서 영화촬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남자가 권총을 꺼내들고 동생의 입에 총구를 겨눴다.

“잔말 말고 제대로 말해? 각하 만나러 갔지? 거짓말하면 너 죽어.”

잠시 후 그들은 부산 촬영장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철수했다. 그의 고백을 들은 지 1년여가 지났을 무렵 그의 남동생을 만났다.

 

“누나가 (대통령을) 만나는 줄 알고 있었어요. 그날 누나가 촬영 중이었기에 망정이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면, 아니, 각하와 함께 있었다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어요.”

 

당시 그의 동생은 공직에 몸담고 있었다. 필자는 여러 차례 두 사람에게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박 대통령의 자녀들이 살아있는데다 장성한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고 했던가. 박 대통령 주변에는 여자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육 여사의 가슴도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육 여사는 정치·사회적인 문제 외에 항간에 떠도는 여배우와의 염문설에 대해 대놓고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이를 반길 리 만무했다.


 

“궁정동을 거쳐간 박정희의 여자가 200명이 넘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자신을 변호한 안동일(安東壹·67)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다는 말이다. 김 전 부장이 대통령을 ‘제거’한 이유 중 하나로 ‘여자 문제’를 언급할 만큼 박 대통령 주변에는 많은 여자가 있었다.

 

지난 연말, 필자는 가수 김세레나(59)씨를 만났다(‘여성동아’ 2006년 12월호 ‘두 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 전직 대통령들과의 특별한 인연’ 기사 참조). 기사화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당시 필자에게 “박 대통령과 한때 특별한 관계였다”고 고백했다.

 

1960년대 후반 데뷔 2년차(당시 19세)이던 그가 생방송 출연 직전 긴급 호출을 받고 간 곳은 대통령과 장관이 참석하는 파티였다. 김씨의 팬이던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요의 대중화에 앞장서줘서 고맙다”며 그에게 ‘국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이후 국빈급 만찬에 자주 참석했던 그는 박 대통령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방송국에 갔더니 한 간부가 저를 불러 ‘미안하지만 상부의 지시 때문에 오늘부터 방송출연이 금지됐다’고 통보하더라고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었죠. 제가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조치가 내려졌나 봐요.”

 

그는 “육 여사측이 직·간접으로 그런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 출연 금지 통보를 받은 직후 ‘가수 인생도 이것으로 끝났구나’ 하고 몹시 낙담했다. 집 근처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모은 수면제로 자살을 기도했는데, 위 세척 후 겨우 살아났다. 수면제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후 고위관계자 K씨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평소 안면이 있는 K씨에게 방송 출연 정지 사실을 알렸다. 다음날 방송 출연 금지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신동아,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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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정도의 자료를 제공해 드렸으면  70년대 "빨갱이 박정희" 정권 당시의 실제적인 부패 타락상의 정황들에 대해 거의 모두 아셨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정말 제기하고픈 내용은

 '채홍사'가 '신군부 정권'시절에도 그대로 존속 하였다는 사실이다. 

 

"살인마 전두환"은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부정축재'와  '재단을 통한 은닉방법' 은 물론이거니와 이 '채홍사'와 '안가 문화'까지도 '박정희'시대의 모든 것을  답습하여  박통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지금의 이 난장 밤문화

 


 

어떤 CVR들이 시작했는지

 

 

 

 

 

 

 

이젠  알겠쑤?

 

 


 

   

 

 

▶謹 弔◀

 

 

  

故 '김대중 대통령'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쌍용자동차 직원/부인'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故 '강희남 목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박종태 열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용산참사 희생자'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08년 5월26일 전주 촛불문화제에서 분신으로 촛불이 되신 이병렬씨

故 '이병렬 열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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