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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기획시리즈13-폭로] 박정희의 부정축재(6) -영남대 [1]

탄핵한표추가

주소복사 조회 1683 09.09.21 20:59 신고신고


 

 

  

 

바발쒁히들의  게저찌랄에 참고 보다못해서 어떤 시벌럼들이 진짜 '빨갱이'인가 를  밝히기 위하여 시리즈로 글을 올리기로 하고 지난 번까지 써서 올린 글들입니다.

 

 

[기획시리즈1-폭로] 진짜 '빨갱이'는 '박정희'였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755805&

이 글에서는 '박정희'가  남로당 군총책인 "진짜 빨갱이" 였으며  

 

 

[기획시리즈2-폭로] '빨갱이 박정희'와 야합한 조선일보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281

5.16 구사 쿠데타 이후  '좃쎈일보'같은 사회지도층에 있었던

친일 기득권층들과의 야합과 그 과정에서의 부도덕적 타락상 과

 

 

[기획시리즈3-폭로] 아내도 '고사'시킨 '빨갱이 박정희'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413

 그에 따른  영부인의 외로운 고뇌와 비운울 이야기 하였으며,

 

 

[기획시리즈4-폭로] '빨갱이보다 더한 빨갱이' .박정희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499&

 혼맥으로 얽혀진 정경유착과 그에 따른 병폐를 설명드렸고

 

 

[기획시리즈5-폭로] 박정희를 위해 사법살인한 '이회충'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768&
박정희 정권을위해 사법살인까지 한 '이회충'에 대한 이야기

 

 

[기획시리즈6-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2972& 

 그리고 '박정희'와 그 '정권'의 부정축재 방법과 사례에 대해 말씀드렸으며

 

 

[기획시리즈7-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2)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190  

 부정축재의 증거물인 청와대 비자금 금고와 그 처리

 

 

[기획시리즈8-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3)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462 

 무형의 재물인 '재단' 들에 대해 보고 있었다가

 

 

[기획시리즈9-폭로]'빨갱이 박정희'의 '술과 여자'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651  

잠시 촛점을 돌려 '박정희의 난봉질'에 대해 말씀드렸으며

 

 

[기획시리즈10-폭로]'빨갱이 박정희'의 '술과 여자' (2)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769  

'박정희의 난봉질'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과

이러한 행태가 신군부 시절에도 존속 했었슴을 밝혀드렸고

 

 

[기획시리즈11-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4)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5840  

 다시 '박정희의 부정부패' 내용으로 돌아가서

박정희가 만든 "정수장학회의 실태"에 대해 알아보았으며

 

 

[기획시리즈12-폭로] '박정희'의 부정축재(5) - 영남대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26093  

  박정희가 '교주' 로 명시되어 있는 "영남대"의 

"강탈 취득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열세번째 글입니다. 

 

'박정희의 부정축재' 와 관련된 불법적으로 강탈한 '재단'은 정수장학회,영남대 가 대표적이며, 이중  교주가 '박정희'로 학칙에 명시되어 있는  "영남대"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었으며 오늘도 그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영남대" 는 '최해청'으로 부터 강탈한 '청구대학'과 삼성 이병철이 상납한 '대구대학"의 합병에 의해 만들어졌슴을 지난 번 글에서 밝혀드렸습니다만 그 내용중에서 이 "대구대학 상납" 에 대한 이야기가 미진하여  그 내용을 보충 설명 드리겠습니다. 

 

  

현재의 '영남대' 는 이후락의 주도하에  상기 두 대학을 합병하고 "영남대"로 개칭하였다는 것과 "청구대학"의 강탈은  지난번 글에서 언급하였으나 

 

  

삼성 이병철이 상납하였다고 표현된 "대구대학" 역시 "상납" 이 아닌 권력의 힘에 의한 "강탈"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대학을 각기 강탈하고  이를 하나로 합병하여 "박정희"의 퇴임후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 준비는 "유신체제"를 설립하고 나서 '영구집권'이 '이 가능하게 되자 그 소용가치에 대한 비중이 엷어져 버렸습니다.  

  

 


4.'영남대'의 설립 비화(秘話) - 중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삼성 재벌 이병철이 대구대학을 순순히 내놓게 만든 [한국비료 밀수사건]이었다.

 

[한국비료 밀수사건]은 삼성이 공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서 사카린을 밀수하다가 적발돼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당시 한국비료의 사장은 삼성 이병철 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창희씨가 맡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이창희 사장은 급기야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 일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이를 계기로 결국 삼성은 대구대학에서 손을 떼면서 학교를 박대통령에게 사실상 헌납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헌납은 이병철이 5·16 직후에 부정축재자로 구속되면서 막대한 재산(40억)을 박정희에게 헌납하고 풀려난 경우와 똑같다. 이병철은 대구대를 돈주고 인수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대학 운영을 맡은 후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운영권을 다시 내 놓으려면 운영을 의뢰했던 최준을 비롯한 먼저 운영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옳았지만 이렇게 박정희에게 헌납하는 절차를 부득이 따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박정희를 교주로 모신 청구대에 대구대를 합병시켜 몸집을 불리는데 다리를 놓는 역할을 맡았던 인물은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이후락과 박정희와 대구 사범학교 동기 동창이던 한석봉 변호사 등이었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영남대학교라는 하나의 종합대학교로 탄생된 배경은 이 같은 정치 경제 역학 구조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1967년 12월 16일 통합되어 탄생한 영남대학교의 통합 설립 이사들의 결의문에 짙게 베어있다.

 

 "교육에는 전통과 목표가 있어야 하고 한 학원에서는 교육의 목표를 지향해 가는 정신적 지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통합되어 새로운 법인 새로운 학교로 재출발하는 영남학원과 영남대학교는 양 대학의 창학 정신을 살려 새로운 전통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또 영남이 배출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 이념을 우리 법인과 학교의 교육정신으로 삼아갈 것을 우리는 다짐한다. "

 

통합 설립 당시의 이같은 원칙은 "법인은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 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영남학원의 정관 제 1조에 명시함으로써 그대로 반영되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남은 여생을 자신의 고향에 내려와 대학을 경영하려던 소박한 꿈은 그러나 유신이라는 장기집권 플랜과 독재 정치로 인해 점차 현실과는 멀어져 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적을 양산하며 철권을 휘두르던 그도 결국 수하의 총탄에 맞아 끝내는 그리던 고향 땅의 대학 교정을 밟아보지 못한 채 생을 마쳐야 했다.

 

박정희가 말년에 돌아가 있으려던 영남대는 이동령(李東嶺)을 이사장으로 해서 이후락, 이효상, 김성곤, 신현학, 백남억 등이 이사직을 맡았다. 모두 쟁쟁한 인물들이다. 그 속에 최준도 끼여 있었지만 2년 뒤에 그만둔 것으로 되어있다. 자신은 그 속에서 아무 할 일도 없고 할 수도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자기 고향 땅에 돌아갈 마지막 명예로운 안식처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의 귀향은 아마도 그가 온갖 국민적 저항을 억누르고 3선 개헌으로 다시 집권을 연장한 후 임기를 마친 뒤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정희는 1972년 9월에 영남대 이사장에 이효상을 앉히고 다음달에 유신 헌법을 선포한 후 영구집권체제를 만들어 버렸다. 영남대는 그가 언제라도 권좌를 내던지고 돌아갈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는 아마도 죽는 날까지 국가최고통치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마침내 영남대로의 명예로운 귀향도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것이다. 시계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먼 길을 걸어다니다가 공부 열심히 해서 유명한 대구사범까지 마친 소년. 전국의 많은 대학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대구에 있는 대학들을 갖고 싶어했는지는 이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그 당시에 품었던 야망에 대한 성취욕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야망과 꿈은 잘못 관리하면 추악하게 변질되고 어느 한 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국군 장교로서 여수 반란사건에 가담했던 것도 순순한 사상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일본군 장교로서 민족을 배반하고 있던 그가 해방이 되자 곧바로 장준하, 김준엽 등이 있던 광복군 부대를 찾아갔던 것도 애국심과는 무관하다. 그는 오직 추악한 야망만 좇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 굴절된 야망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변신이 가능할까?

 

가난은 야망을 키워준다.

그는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대충 세수하고 밥 먹고 집을 나서면서 지나가는 기차소리를 듣고 몇 시인지를 알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겨울에는 학교에 가면 그 동안에 도시락이 얼어버릴 때도 있었다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 것을 보니 굶주릴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겠지만 매일 먼길을 그렇게 왕복하며 학교에 다녔다면 그 고생이 그만큼 어린 시골 소년에게 복수심과 같은 야망을 키워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야망은 자칫하면 남을 다치게 하고 자기 자신마저 파멸시킬 때가 있다.

 

박정희는 스탕달의 "적과 흑"의 주인공 줄리앙 솔레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평민 계급으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의 가난과 설움은 무서운 야망을 키워주고 마침내 그는 특권층 라몰 후작의 딸을 오직 출세욕 때문에 임신시킨 후 그의 사위가 되며 귀족 사회에 화려하게 뛰어든다. 그러나 남을 짓밟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로만 향하던 그는 마침내 사형대에 끌려가 파멸되고 만다.

 

박정희가 그랬다.

도덕성이 배제된 야망은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 자신을 출세시키고 번쩍거리는 훈장을 가슴에 달게도 하지만 그는 상승속도만큼 추락속도도 빠를 수 있다. 그의 출세와 말로가 추악한 야망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의 수많은 돌연변이의 반복을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 것인가? 중국 땅에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일본군 장교가 해방이 되자마자 갑자기 애국자처럼 광복군을 찾아간 것은 추악한 야망이란 이름 말고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국군 장교로 있다가 다시 남로당 공산주의 반란의 주동자 속에 낀 공산주의자가 된 것도 출세에의 야망과 달리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반란이 실패하자마자 다시 '혁명동지'들을 배반하고 제 목숨만 살린 후 공산당 잡는 정보장교가 된 사상의 돌연변이는 과연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과정을 보면 그에게는 일제시대나 해방 후를 막론하고 개인의 추악한 야망 이외에는 어떤 순수한 사상도 이념도 없었고 그래서 수없이 개헌을 거듭하고 거짓말을 반복하며 영구집권의 유신체제까지 만들었다가 '궁정동 놀이터'에서 욕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한 생애를 마침으로써 결국은 영남대로 돌아가는 명예로운 귀향의 꿈을 스스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최초의 대표적인 설립자 최준을 비롯해서 그 다음의 이병철 그리고 그 다음의 박정희 등 그 누가 임자였고 그 누가 총장이나 재단 이사장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청구대와 대구대는 종합대학인 영남대가 되면서 지금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어느 대학보다도 민주적 운영체계가 잘 잡혀져 가는 대학임에 틀림없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과 교수들이다.

그들이 바로 그 대학의 진정한 주인이며 재단은 학생들을 키워주고 교수들을 키워주는 후원자인 셈이다. 다만 지금의 영남대가 되기까지에는 많은 곡절이 있었으나 이 대학을 위해서는 차라리 박정희가 사라진 것이 다행이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청구대와 함께 대구대를 빼앗아 하나를 만들어 버린 후 막강한 권력과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키워나갔다. 국가 최고의 무서운 독재자로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영남대를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한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재정적 지원만으로 일류대학이 될 수는 없다.

대학은 진리탐구의 전당일 뿐만 아니라 정의와 양심을 지키는 지성의 전당이다. 그런 대학의 주인이 민주정권을 총칼로 약탈하고 국민의 선거권마저 뭉개버린 영구집권 체제를 만든 독재자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떠난 후 영남대에서는 뜨거운 민주화의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박정희의 뒤를 이어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5·18 광주사건으로 광란의 피의 축제를 벌이며 온 세상을 공포 속에 몰아 넣었지만 이보다 사흘 전에 영남대 교수들은 긴급교수회의를 열고 결의문을 발표했다.

 

{… 학생들의 계속적인 민주적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12일 박근혜를 이사장으로 하는 새로운 영남학원 법인 이사회가 문교부의 승인을 받았으며, 이 사실이 알려짐을 계기로 5월14일 대규모적인 학생시위 사태가 발생하였다. …} 이렇게 전제한 후 교수들은 박근혜를 이사장으로 하는 새 이사회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학생들의 격화된 시위에 교수들까지 합류해서 박정희 세력을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영남대를 그만큼 재정적으로 든든한 기반 위에 올려놓음에 있어서 박정희는 틀림없이 큰 공로자이며 그래서 그의 기념관도 세워지고 "우리는 박정희씨를 우리의 법인과 학교의 최고지도자, 교주로 모시고 그 지도를 받고 그 지도에 따를 것을 굳게 결의한다"고 이사진은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지만 재력과 권력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대학의 참된 이념과 그 힘 사이에 놓여있는 모순과 괴리가 극복되지 않는 이상 그 공로자의 이름은 그 자리에 남아있기 어려웠다.

 

박근혜는 마침내 반년도 제대로 못 채우고 그 해 11월 17일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89년까지 이사로 남아 있었다. 동생 박근영도 83년부터 약 4년간 이사직에 있다가 떠나버렸다. 이렇게 되면서 교수들의 결의문 내용대로 '외부세력'이라고 말했다. 소위 박정희 세력의 입김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음으로써 이처럼 외부의 정치적 입김들이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 대학을 위해서는 매우 다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입김이든 재벌 입김이든 누구의 입김이든 결코 어떤 대학도 그들의 개인적 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이며 대학의 진정한 주인은 여기서 키워지는 학생들과 이들을 키우고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끝】

 

 


 다음회차에는 일반에는 알려지지 않은 놀랄만한 내용이 올릴 예정입니다만

다음회차의 글 길이에 따라서  다다음회차로 변경될 수는 있습니다.

 

 

 

 

이 'MB 정권'이

 

 

어디서 '벤치마킹'했는지

 

 

 

 

이젠 아시겠수?

 

 

국제신문

 

   

 

 

▶謹 弔◀

 

 

  

故 '김대중 대통령'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쌍용자동차 직원/부인'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故 '강희남 목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박종태 열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용산참사 희생자'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08년 5월26일 전주 촛불문화제에서 분신으로 촛불이 되신 이병렬씨

故 '이병렬 열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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